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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VM IR 표준화: 컴파일러 세계의 바벨탑 이후

혼돈의 시대: LLVM 이전

옛날 옛적, 컴파일러들이 살던 세상은 마치 바벨탑 붕괴 직후와 같았다. 각자 다른 언어를 쓰는 민족들처럼, GCC는 GCC만의 방언을, Visual C++는 Microsoft만의 은밀한 속삭임을, ICC는 인텔의 고고한 방언을 구사했다.

이 시대의 프로그래밍 언어 창조자들은 마치 맨손으로 스카이스크래퍼를 짓는 건축가와 같았다. 새로운 언어를 하나 만들려면:

  1. 1층: 파서와 AST 구축 (아직 괜찮다)
  2. 2층: 의미 분석과 타입 체킹 (숨이 찬다)
  3. 3층: 최적화 로직 구현 (등이 아프다)
  4. 4층: x86 코드 생성 (현기증이 난다)
  5. 5층: ARM 지원 추가 (토할 것 같다)
  6. 6층: PowerPC도? (의식을 잃는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혁신적" 언어들은 2층 정도에서 포기하고 인터프리터로 전향하거나, 용감하게 도전했다가 성능은 Python보다 느리고 호환성은 없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통일의 서막: LLVM의 등장

2003년, 일리노이 대학의 한 대학원생이 "왜 모든 컴파일러가 바퀴를 다시 발명해야 하지?"라고 중얼거리며 LLVM을 만들기 시작했다.

LLVM IR은 마치 에스페란토와 같았다 —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가 공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간 언어. 하지만 에스페란토와 달리, 이건 실제로 성공했다.

define i32 @add(i32 %a, i32 %b) {
  %result = add i32 %a, %b
  ret i32 %result
}

이 단순해 보이는 IR 코드는 사실 로제타 스톤이었다. C++의 함수든, Rust의 함수든, Swift의 메소드든 — 모든 것이 이 형태로 번역될 수 있었다.

혁명의 완성: 표준화 이후

언어 창조자들의 해방

LLVM 이후,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은 마치 조립식 가구를 사는 것과 같아졌다.

  • 기존 방식: 나무를 베고, 제재하고, 못을 만들어서 의자 하나 완성 (5년)
  • LLVM 방식: IKEA에서 부품 사서 드라이버로 조립 (5개월)

Rust 개발자들은 "메모리 안전성"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에만 집중하면 되었고, Swift 팀은 "Objective-C와의 호환성"에만 신경 쓰면 되었다. 나머지는 LLVM이 다 해결해 주었으니까.

N×M → N+M 의 마법

전통적으로 P개 언어를 Q개 플랫폼에서 지원하려면 P×Q개의 백엔드가 필요했다. 마치 전 세계 모든 도시 사이에 직항편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미친 짓이었다.

LLVM은 여기에 허브 공항을 도입했다. 모든 언어는 LLVM IR이라는 허브로 가고, 거기서 다시 각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구조. 갑자기 P+Q개면 충분해졌다.

최적화의 민주화

LLVM 이전에는 최적화가 마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비밀 레시피처럼 각 컴파일러의 독점물이었다. GCC의 -O3은 GCC만 알고, ICC의 벡터화는 인텔만 알고 있었다.

LLVM은 이를 오픈소스 쿡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제 Rust 개발자도 C++급 최적화를 얻을 수 있고, Julia도 Fortran급 수치 계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새로운 표준의 시대

기업들의 항복(?)

가장 재미있는 것은 대기업들의 반응이었다:

  • Apple: "우리만의 독자적 컴파일러를... 어? LLVM 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 Google: "Android NDK에 자체 컴파일러를... 음, 그냥 Clang 쓰자"
  • Microsoft: "Visual C++만으로 충분하... 아니다, Clang도 지원하자"

마치 모든 자동차 회사가 갑자기 같은 엔진을 쓰기로 합의한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언어의 민주화

이제 10명짜리 스타트업도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만들 수 있다. 예전 같았으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기업만 가능했던 일이다.

결과? Rust, Zig, Carbon, Mojo... 혁신적인 언어들이 뽕뽕 터져 나오고 있다. 마치 인쇄술 발명 이후 책이 폭증한 것처럼.

결론: 표준화의 역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LLVM IR이라는 하나의 표준이 오히려 무수한 다양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모든 언어가 같은 중간 표현을 쓰게 되자, 역설적으로 각 언어는 정말 중요한 차별점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Rust는 메모리 안전성에, Swift는 사용성에, Zig는 성능에...

마치 모든 요리사가 같은 주방기구를 쓰게 되자, 오히려 레시피의 차이가 더욱 선명해진 것과 같다.

LLVM IR 표준화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서, 프로그래밍 언어 창조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진정한 게임 체인저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좋은 표준은 창의성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이 집중될 곳을 명확히 해준다."